60대 후반~70대 초반으로 보였다. 노스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이란-콘트라 사건은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관련자들의 책임을 철저히 밝히는 게 외압 논란 종식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첩경이다.리더십 분야 권위자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당시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보는 이에 따라 감응에 차이를 주는 지점이다. 나는 몰랐다고 발뺌한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인상은 사건의 희생자가 아니라 책임자라는 사실이었다. 전자가 피동적·강제적 환경이라면 후자는 능동적·선택적 무대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니 집단 항명 수괴(국방부)니 어마무시한 말들이 서로 맞부딪치니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게다.그런데 여기서 하려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남북 관계가 매우 활발해서 일반인들의 방북도 드물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한국전쟁 중 인공 치하에서 납북당하신 분들도 계셨다. 몸에 맞는 어린이 옷 입은 북한.폐지같이 된 그림 두 장을 어렵게 가져다준 분이 되풀이하면서 아쉬워한 것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월북했다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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